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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국왕관련 이름

  • 관리자
  • 21.12.14
  • 104

1.다양한 이름

조선 국왕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다.

어릴 적 이름 아명(兒名), 원래 이름 원명(原名),

관례때 받는 자(字)와 별도의 이름 호(號)가 있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양반사대부도 가질 수 있는 이름이었다.

원명은 왕세자로 책봉할 때 정해졌다.

종묘와 사직에 왕세자 책봉을 알리려면 이름이 필요했다.

순종이 왕세자로 책봉될 때 신하들은 척(坧), 전(㙉), 지(土+示)를 올렸고

고종이 첫 글자로 낙점했다.

자는 성인이 되면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이름 대신에 지어주는 이름으로 덕을 나타낸다.

존호(尊號), 묘호(廟號), 시호(諡號), 전호(殿號), 능호(陵號)는

국왕과 왕비에게만 주어지는 이름이다.

이중에서 존호는 국왕과 왕비가 살아있을 때부터 받지만

나머지는 모두 사망한 후에 받는 이름이다.

다만 시호는 국가에서 4품 이상 고위 관리나 유현(儒賢)이 사망후

공덕을 평가하여 내리기도 하였다.


2.존호(尊號), 묘호(廟號), 시호(諡號), 전호(殿號), 능호(陵號)

1) 주인공의 덕을 기리기 위해 올리는 이름, 존호

국가의 변란을 진압했거나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

오랜 기간 즉위했을 때 이를 축하차 존호를 올렸다.

생전에 존호를 상존호(上尊號), 가상존호(加上尊號)

사후에 받으면 추상존호(追上尊號)라 하였다.

조선 초기에 존호는 네 글자였지만 세조 때부터 여덟 글자로 정해졌다.

이에 비해 왕세자에게 올리는 존호는 네 글자

왕세자빈과 왕비에게 올리는 존호는 두 글자였다.

1872년(고종 9)에 고종은 태조에게 ‘응천조통 광훈영명(應天肇統 廣勳永命)’

이 해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한 1392년으로부터 8주갑 48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2) 국왕이 사망한 후에 정해지는 사당의 이름, 묘호

‘태조’ ‘세종’은 바로 묘호다. 국왕별 실록의 이름에서도 제일 앞에 있다.

태조실록은 ‘태조강헌대왕실록’, 세종실록은 ‘세종장헌대왕실록’이라 부른다.

묘호는 두 글자로 정해지며 앞 글자는 시(諡.시호)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해진 글자 중에서 결정하고 뒤의 글자는 종계(宗系, 종가의 계통)와

조공종덕(祖功宗德)의 예제에 따라 ‘조(祖)’나 ‘종(宗)’을 썼다.

조는 나라를 처음 세웠거나 정통을 다시 일으킨 경우에 쓰고

종은 왕위를 계승한 경우에 쓴다.

태조, 세조, 인조는 사후 즉시 조의 묘호를 받았지만

선조, 영조, 장조, 정조, 순조, 문조는 종에서 조로 묘호가 바뀐 경우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조’와 ‘종’이란 묘호는 황제만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국왕과 관리들은 조나 종을 붙인 묘호를 계속 사용하였다.

예치의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면 국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고

중국에 대해 조선의 자존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3) 국왕 사후 생전시 언행을 참조하여 정하는 이름, 시호

국왕의 시호에는 신하들이 올리는 시호(상시上諡)와

중국 황제가 정하여 내리는 시호(사시嗣諡)가 있었다.

신하들이 올리는 시호는 국왕이 사망하고 5일이 지난 후 입관을 하고 나서 의논하였다.

시호의 글자 수는 대개 8자였고, 글자 하나하나에 국왕의 일생을 평가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1800년(정조 24) 6월 28일에 정조가 창경궁의 영춘헌에서 승하하였다.

7월 6일에 의정부와 관각(館閣)의 관리들이 정조의 시호, 묘호, 전호, 능호를 정하여 올렸다.

시호는 문성무열 성인장효(文成武烈聖仁莊孝), 묘호는 정종(正宗), 전호는 효원(孝元)

능호는 건릉(健陵)이었다.

시호가 결정되면 이를 기록한 옥책과 금보가 제작되었으나

중국황제가 내린 시호는 옥책에 표시하지 았다.

4) 국상시 빈전(殯殿), 혼전(魂殿)에 사용하던 전호.

빈전은 국왕과 왕비가 사망한 후 상여가 나갈 때까지 관을 모신 전각이며

혼전은 국왕과 왕비의 국장을 치른 뒤 삼년상을 지내는 동안 그 신주를 모신 전각이다.

5) 국왕이나 왕비의 시신을 안치한 무덤의 이름, 능호

국왕이 사망한 후 여러 가지 이름을 정할 때 함께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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